돌스냅
할아버지 품에서 처음 웃은 아이
라함이는 처음 한 시간 동안 한 번도 웃지 않았다. 강남의 한 돌잔치홀, 라운지 룸. 한복을 입히는 동안 거울만 봤다.
엄마가 머리띠를 고쳐 매준다. 라함이가 거울을 본다. 무표정이다.
아빠가 옆에서 “라함아 라함아” 부른다. 시선이 잠깐 가다가 다시 거울로 돌아온다. 셔터를 다섯 번 눌렀다. 다섯 번 다 같은 표정.
라운지 안 분위기는 따뜻한 편이었다. 천장 조명이 베이지로 가라앉아 있었고, 한복 색동 소매에 그 빛이 부드럽게 떨어졌다. 조건은 좋았다. 다만 아이의 표정이 닫혀 있었다.
할머니 손이 닿아도 시선은 바깥으로.
이런 아이는 가끔 있다. 낯가림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첫 환경에 적응 중이라고 보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부모가 더 다가갈수록 굳는다. 부모는 그걸 모른다. 보통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더 자주 부르고 더 큰 표정을 짓는다. 그게 거꾸로 가는 길이다.
부모를 한 발 물러나게 한다
아이가 웃지 않을 때는, 부모를 멈추게 하는 게 먼저다.
라함이 엄마한테 "잠깐 라함이 시야 옆쪽으로 비켜주세요"라고 했다. 처음에는 의아한 얼굴이었다. 보통은 부모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엄마가 한 발 물러나고, 할머니가 다가왔다. 할머니가 라함이 손을 잡았다. 그래도 웃지 않았다. 다만 시선이 거울에서 떨어졌다.
이게 1단계다. 아이가 거울이나 천장 같은 정지된 사물에서 시선을 떼는 순간. 이 다음부터 카메라 셔터의 의미가 생긴다.
낯가림이 심한 아이일수록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된다. 아이가 거울을 본다는 건, 그 안의 자기를 보는 게 아니라, 가장 자극이 적은 표면을 골라 시선을 묶어두는 거다. 이 시선을 풀어주는 첫 번째 방법이 부모를 옆으로 비키게 하는 거다. 부모는 아이에게 가장 큰 자극원이고, 그 자극이 닫혀 있을 때는 더 큰 압력이 된다.
234번째 컷,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한 시간이 지났다. 분장실 의자에 앉은 라함이는 여전히 표정이 굳어 있었다. 한복을 다시 매만지고 라운지 룸에서 부모와의 컷을 몇 장 찍었지만, 사진 속에서도 그 무표정이 그대로였다.
그때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라운지 입구. 할아버지가 정장 차림으로 들어와 라함이 옆에 앉는다. 별 말 없이. 라함이가 고개를 돌린다. 눈이 마주친다. 할아버지가 두 팔로 라함이를 안아 들어올린다.
들어올리는 동작은 천천히였다. 다른 어른들이 라함이를 부를 때처럼 큰 목소리도 없었고, 갑작스러운 손짓도 없었다. 라함이 시야 안에 천천히 들어오고, 천천히 안고, 천천히 들어올렸다. 라함이가 떨어진 적 없는 안정된 손길이었다.
234번째 컷.
들어올린 순간 한 번에 웃음이 터졌다. 234번째 컷.
이게 시작이었다. 한 번 웃은 아이는 다음 컷에서 굳지 않는다. 한 번의 웃음이 풀어주는 것은 아이 자신만이 아니라 그 자리의 분위기 전체다.
그 다음부터는 거의 다 잡혔다
홀 안 본 행사는 오후 두 시 정각에 시작했다. 입장 컷, 부모와의 인사 컷, 어른들의 박수.
부모와의 컷도 풀렸다. 라함이가 아빠 무릎 위에 앉아 손을 휘젓는다. 식기 부딪히는 소리, 박수, 사람 웅성거림. 이 정도 자극이 와도 라함이가 더는 굳지 않는다.
천장 패턴 조명, 부모, 그리고 라함이.
엄마가 옆에서 박수 박자를 맞춘다. 아빠는 라함이를 무릎 위에 안고 균형을 잡는다. 부모와의 컷에서 라함이의 시선이 처음으로 카메라를 찾는다. 234번째 컷 이전과 이후는 사진 한 장으로 갈린다.
같은 셔터, 같은 거리, 같은 빛이라도 아이의 표정 하나로 사진의 결이 달라진다. 234컷 이전의 사진들은 기록은 됐지만 아무도 다시 들여다보지 않을 사진이다. 234컷 이후로는 모든 컷이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한 번의 웃음이 만드는 차이가 그렇다.
아빠 무릎. 같은 아이가 맞나 싶다.
엄마가 수저와 포크를 잡아준다. 돌잡이 직전이다.
엄마 손, 라함이 손. 둘이 같이.
엄마가 모니터를 한참 보셨다. 말이 없었다. 한참 뒤에 한 마디.
“그 컷, 친정 부모님께 보내주세요.”
234번째 컷을 말한 거였다. 들어올린 그 컷은 한복 색동 소매가 펼쳐지면서 아이의 얼굴 앞으로 가벼운 그늘이 한 줄 떨어진다. 그 그늘 너머로 라함이가 처음 웃는다. 사진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한 번 더 보게 되는 컷이 있다. 그 컷이 그랬다.
야외에서는 처음부터 풀려 있었다
본 행사가 끝나고 야외 단체 컷을 위해 광장으로 옮겨 갔다. 라함이는 흰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한복에서 드레스로, 의상을 바꾸는 데 약 8분.
광장에 도착한 라함이는, 들어올 때와는 다른 아이였다. 빨간 벽돌 매장 거리, 늦은 오후 빛이 옆으로 들어오는 자리. 광장 한쪽 유리 난간 앞에 라함이를 세웠다.
유리 난간을 잡고 한참 바깥을 봤다.
낯가림이 심한 아이의 첫 컷은 카메라 정면이 아니라 측면이다. 정면은 셔터에 굳고, 측면은 풍경에 풀린다. 라함이가 광장 유리 난간을 잡고 바깥을 바라보는 컷이 이번 촬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컷 중 하나였다.
이 컷을 잡고 나서야 정면 컷으로 옮길 수 있다. 측면에서 정면으로 가는 순서가 거꾸로 가면 같은 굳은 표정을 야외에서 한 번 더 만나게 된다. 실내에서 굳었던 아이를 야외에서 풀고 싶다면, 카메라가 아이의 옆얼굴부터 받아야 한다.
들어올린다. 또 웃음이다.
부모가 라함이를 들어올렸다. 또 웃었다. 234번째 컷 이후로는 들어올리는 동작 자체가 트리거가 됐다. 카메라 앞에서 굳던 아이가,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표정이 풀린다.
같은 자리, 다른 표정.
광장 컷 22장. 그중 A컷 7장. 평균 이상의 비율이다. 이런 흐름은 첫 30분의 분위기에서 거의 결정된다. 현장에서 빠르게 감지하지 못하면 한 시간 이상 굳어버린다.
낯가림이 풀린 아이는 카메라뿐 아니라 처음 본 풍경에도 반응한다. 광장 매장 유리 너머로 지나가는 행인을 본다. 자기보다 큰 아이가 강아지를 끌고 가는 걸 한참 바라본다. 이 시선이 사진 안으로 들어온다. 눈빛이 멀리 가 있는 컷이 가까이 모인 컷보다 깊다.
가방을 챙기며
오후 다섯 시. 광장 가로등이 켜지기 직전이었다. 라함이가 할아버지 어깨너머로 손을 흔들었다.
778번 셔터를 눌렀다. 보정본 기준 132장.
가방을 챙겼다. 카메라를 케이스에 넣었다. 마지막에 본 컷은 라함이의 그 손짓이었다. 본 컷도 야외 컷도 아니라, 그저 다음 약속을 향해 떠나는 어른의 어깨 위에서 손을 흔드는, 1초도 안 되는 컷이었다. 그 컷이 결국 이번 촬영의 마지막 페이지에 들어갈 컷이었다.
라함이는 처음 한 시간 동안 웃지 않았다. 그러나 그 한 시간이, 다음 두 시간을 풀어준 시간이었다. 처음의 무표정은 사진의 실패가 아니라 사진의 시작이었다. 그 시작을 알아본 사람이 부모도 카메라도 아닌, 잠시 옆에 비켜 앉은 할아버지였다는 것이, 이 촬영이 남긴 가장 큰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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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돌잔치 사진에서 아이가 안 웃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부모를 한 발 물러나게 하고, 익숙한 어른(할머니·할아버지)을 아이 시야 안에 두면 풀린다. 부모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갈수록 아이는 굳는 경향이 있다.
낯가림이 심한 돌 아기, 카메라 정면을 어떻게 받나요?
정면을 먼저 노리지 않는다. 측면이나 풍경을 보는 옆모습을 먼저 잡고, 시선이 풀린 다음 정면 컷으로 옮긴다. 라함이도 광장 유리 난간을 보는 측면 컷이 가장 자연스러웠다.
돌잔치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가족 컷은 언제 나오나요?
부모와 단둘이 있는 컷보다, 조부모·이모·삼촌이 함께 있는 컷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부모는 카메라를 의식하고 다른 가족은 덜 의식하기 때문이다.